커뮤니티

착한 꿈이 자라는 에프터스쿨매니저센터

정보나눔

동유럽 유학생들이 바라본 네덜란드의 '자기주도적' 교육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1-07-12 09:43
  • 조회 : 474회

본문

헝가리와 루마니아에서 네덜란드 신학대학으로 유학 온 졸탄씨와 티보르씨

헝가리와 루마니아는 학생보다는 교사가 주도적인 교육을 진행

네덜란드의 석사과정은 철저히 학생 중심적

 

네덜란드 캄펜 신학교는 작지만 오래된 학교이다. 1854년에 학교가 건립됐으니 170년에 가까운 역사가 있다. 이 학교는 작지만 매해 유학생들이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다.

 

네덜란드는 역사적으로 ‘자유’의 가치가 중요한 나라였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나치의 폭격을 받고 항복해 1940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 나치의 지배하에 놓인 것이 네덜란드가 자유를 빼앗긴 짧은 시간이다.

 

반면 다수의 동유럽 국가들은 세계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를 국가체제로 선택했다. 헝가리는 1956년 헝가리 인민공화국을 선포했고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 됐다. 루마니아 역시 1946년 인민공화국이 수립됐다.

 

헝가리는 1989년에 자유 민주주의로 체제 전환을 했고 루마니아는 1990년 1월 1일 공산주의 종식을 선언하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인다.

 

나치에 지배 당한 5년을 제외하고 건국부터 지금까지 ‘자유’의 가치를 지켜온 네덜란드와, 공산주의와 독재자 아래에서 지낸 경험이 있는 헝가리와 루마니아의 교육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헝가리에서 온 졸탄 베이너씨와 루마니아에서 온 티보르 나기씨를 인터뷰했다. 이들은 자국에서 캄펜신학대학교와 비슷한 규모인 150명 내외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작은 신학교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다.




◆졸탄씨는 헝가리에서 교사 중심적인 교육을 받아왔다. ⓒ김정기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온 졸탄은 헝가리의 기본적인 교육체계를 먼저 설명했다.


“우리는 6세나 7세가 되면 학교에 들어갑니다. 저는 상담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칼 로저스와 관련이 된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헝가리에서는 4년간 초등교육을 받고 이후 8년간 중등 교육을 받습니다. 저는 중등학교에 올라가 8년간 각종 교육을 받았습니다. 독일어, 라틴어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후 6년간 대학 생활을 했습니다.”


졸탄에 의하면 헝가리의 중등 교육은 과거 공산주의의 잔재로도 보일 수 있는 주입식 교육과 자유로운 토론식 교육이 혼재돼 있다.


“중등학교 수업은 질문을 하고 토론을 할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시험은 구술식으로 주로 실시됩니다. 모든 것을 외우고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구술시험에 임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방식의 수업방식도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제가 들었던 역사학 과목에서 선생님은 홈페이지를 구축해서 역사자료를 정리해서 보라는 과제를 내주기도 했습니다.”


졸탄은 헝가리의 교육이 방법 측면에서는 다양해져 가고 있지만, 교사가 강의한 내용을 중심으로 구술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기본적인 교육의 틀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티보르 나기씨는 공산주의 체제에 초등교육을 경험했다. ⓒ김정기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역에서 온 티보르는 공산주의 시절 8세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공산주의 시절 학교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모든 아이들은 나이에 따라 그룹으로 나뉘어집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유니폼을 입고, 특별한 스카프를 매도록 했어요.”


루마니아는 티보르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공산주의에서 벗어나게 됐다.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을 맞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루마니아는 ‘피의 혁명’을 경험한다.


‘피의 혁명’은 1989년 12월 티미쇼아라에서 시작돼 루마니아 전역으로 확산된다. 혁명에 참여한 이들은 공산주의 독재자들을 단죄하고 처형했다. 티보르는 당시 두 달간 불안한 시국을 겪은 이후 나라가 안정을 찾았다고 전했다.


독재자의 흔적은 교육 현장에도 남아있었다. 교과서의 첫 페이지는 독재자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혁명 이후 독재자의 사진은 교과서에서 뜯겨져 나갔다. 자유가 찾아온 것이다.


티보르는 “루마니아의 교육은 새로운 정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교육하지 않습니다. 오늘날까지 누적된 정보를 외우는 것이 우리의 교육입니다. 아이들은 많은 것들을 외워야 하기 때문에 많은 숙제를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헝가리와 루마니아는 주된 평가 방식이 구술시험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지만, 교육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루마니아는 전통적인 교육방식을 고수하고 있었고, 헝가리는 새로운 교육방식들을 적용하고 있었다.

 

티보르와 졸탄은 네덜란드의 교육이 자국의 교육과는 사뭇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졸탄은 “제가 다니고 있는 네덜란드의 캄펜 신학교(석사 과정)에는 강의(lecture)라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강의가 없는 대신 제가 주도적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합니다. 교수님들은 개인적인 연구를 잘 할 수 있도록 격려를 해줍니다. 제가 공부했던 강의 중심의 헝가리의 신학교와는 정 반대죠.”


졸탄이 밟은 석사과정은 매 코스마다 학생이 주도적으로 연구주제를 결정하고 연구 과정을 교수와 논의해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 매 과목마다 6번의 수업이 있지만, 수업은 강의라기보다는 학생들이 연구주제를 어떻게 찾고, 어떻게 연구주제에 접근하게 해야 할지에 대해 맛보기를 보여주는 시간에 가깝다.


이런 학생 주도적인 학문 분위기는 네덜란드에서 19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된 것과 무관치 않게 느껴진다.


티보르는 네덜란드의 교육이 새로운 자료를 만들어 내도록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곳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연구주제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또한 하나의 연구 에세이를 만들기 위해 연구주제와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살펴야 하지요.”


졸탄과 티보르는 이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공부 방식으로 인해 올해 8월에 예정된 졸업식에 맞춰 석사논문을 작성할 수가 없었다. 이들은 담당 교수와의 협의를 거쳐 이번 달에 본국으로 돌아간 뒤에 논문을 준비해서 제출하기로 했다.


졸탄은 암기식 교육이 없는 네덜란드의 석사 교육에 대해, 연구물을 만들기 이전에 무엇을 연구할지에 대해 견고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저는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본적인 것들을 확실히 안 이후에 연구에 들어가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티보르는 연구를 잘 수행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교수들이 연구 과정에 대한 상세한 가르침이 선행되어야 하는 점을 짚었다. 학생이 주도적으로 논문을 작성하기 전에 연구에 대한 자세한 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티보르는 “저는 강의를 듣는 것과 교수가 연구물 작성을 지도해 주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자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졸탄과 티보르에 따르면 캄펜 신학교에서 경험한 네덜란드의 석사과정은 개인적인 연구를 권장하고, 수업 시간에 많은 내용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연구를 위한 사전 지식을 쌓고 연구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은 오롯이 개인의 몫으로 주어진다. 그렇지만 공부를 해야 하는 양은 결코 적지 않았다.


네덜란드의 강한 학생 주도적인 교육은 졸탄과 티보르와 같이 교사가 주도적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국가의 학생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경험이다. 주입식 교육이라고도 할 수 있을 법한 헝가리와 루마니아의 교육과 네덜란드의 학생 자율적인 교육이 서로 잘 융합하면 좋겠다는 것이 두 학생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네덜란드 캄펜 = 김정기 글로벌 리포터 kjgwow@gmail.com

이용약관

닫기

개인정보처리방침

닫기

이메일무단수집거부

닫기

사이트맵

센터소개
서비스안내
활동매니저소개
신청·지원
커뮤니티
이용후기
닫기